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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초등학교 5학년 마지막지점에

 

부모님이 헤어졌다

 

정확히는 엄마가 집을 나갔다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은 그 부부싸움현장은

 

그다지 처참하지는 않았다

 

작은 20평형 빌라에 살던 우리집은

 

안방, 그 옆방, 작은방, 주방및거실

 

이렇게 구성되었다

 

내 방은 작은방이고 누나방은 안방그옆방이었다

 

어느 한적한 오후에

 

갑작스레 안방에서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는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집에는 모든 구성원이 있었다

 

난 내방에서 노닥거리고 있었고

 

누나는 누나방에서 체제하고있었고..

 

안방에서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큰 소리로 싸우는 경우는 정말 없어서

 

너무 깜짝놀랐고

 

사람이 사람을 타격하는 소리가 나는 경우도 전혀 없었기에

 

굉장히 놀랐다

 

타격음이 몇번 들리고

 

괴성이 오가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누나는 애써 말리려 부모님을 향해 갔지만

 

아빠는 누나도 못 알아 볼 정도로 사나워졌나보다

 

결국 가장은 구성원 중 여성 둘을 가격했다

 

난 두려움에 떨며 내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부짓고 있었다

 

이게 전부다  이렇게 난 이혼가정에 물들었다

 

ㅆ...발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 무기력하고 멍청하고 바보같은 상황이었다

 

그 새끼한테 죽빵이라도 시도했어야 하는데

 

아무튼

 

이렇게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어영부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갔다

 

교복을 입고 다녀야 하기에

 

다림질이나 세탁이 필요했던 상황이지만

 

엄마가 없는 내겐 사치였다

 

중학교 1~2학년은 나름 쭈구리 생활로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동급생들은 옷깃이나 소매에 때가 없었고

 

교복이 작아지면 새로운 옷을 맞추고...

 

그랬지만 난 아니었다

 

때가 껴도 그냥 입었고 교복이 작아져도 그냥 입었다

 

이게 큰 차이로 느껴졌었다

 

난 별 생각 없었다

 

그냥...엄마가 잘 챙겨주는 아이들은 이렇게 번듯하구나...하는 것을 

 

이제서야 새삼스레 느끼는 것 일 뿐...

 

중학교시절 

 

누나와 나만 남은 집에

 

아버지는 매일 8시 넘어 퇴근하고

 

이것도 중학교 3학년땐

 

아예 집에 귀가하시질 못했다

 

지방으로 내려가 버리셨으니

 

생활비는 신용카드한장으로 해결해야 됐고

 

각종 공과금과 학교에 내야하는 돈은 체납되기 일수였다

 

당시에는 공과금이나 학교에 내야하는 돈은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했기에

 

그저 둘이 끙끙 앓을 뿐이었다

 

가스비는 매번 3개월을 밀려 끊기는 것이 일상이고

 

급식비도 밀리고 밀려 교무실에 불려가서도 해결이 안되며

 

담임선생님이 아빠에게 연락을 굳이 해서야 해결됐다

 

이렇게 학생이 겪어서는 안 될 여러 채무 스트레스가

 

나와 누나에게 고스란히 박혔고

 

난 뭐...그딴거 상관안했지만

 

누나는 그게 큰 상처였나보다...

 

여전히 아빠를 증오하고 있다

 

난 그거 몇개월 밀리고

 

가스끊겨서 부탄가스로 물끓여 샤워하는 정도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참 생각 없이 살았네...

 

 

나의 고등학교는 다소 거친 곳을 가서

 

부모님이고 나발이고 그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케어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이 ㅅㅋ들이 케어를 거부했나...싶을 정도로

 

당연히 용돈도 못받는 나 였기에

 

고등학교 1~2학년 넘어가는 겨울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일당제 호텔아르바이트를 아주 열심히 했다

 

주말마다 일했고 방학 땐 평일도 자주 일했다

 

덕분에 난 용돈 걱정 없이 매점에서 마구 사먹고

 

피씨방도 잘 다녔다

 

누나는 엄마와 연락이 되어 용돈을 잘 받았던 듯 싶다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난 고등학생...누난 대학생 때 

 

엄마와 만난 적이 있다

 

그냥 간단하게 저녁만 먹었는데

 

내가 너무 쳐먹었나보다..

 

가게사장님이 "밥 좀 더 줄까"...했던 기억이 있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엄마는 그게 슬펐나보다

 

자식이 허겁지겁 음식물을 입에 욱여넣는게 

 

물론 나는 비빔밥을 좋아해서 그냥 잘 먹었을 뿐인데...

 

시간대도 안좋긴했다...밤10시라니...참 늦은 저녁이다

 

엄마는 그때 공장에서 일에 찌들어 있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렇게 난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되었다

 

되도않는 캐쥬얼 정장을 혼자 맞춰서 입학식에 갔었다

 

참...그 갈색 자켓과 바지는 아...심지어 핑크와이셔츠...

 

심지어 전부 오프라인 매장에서 마네킹에 매칭되었던 것이었다

 

그땐 참 패션개성들이 넘쳤었나보다

 

대학생을 보내고 있을 무렵 엄마와 외할머니를 같이 만났었었다

 

그땐 아련하거나 뭉클한 감정보단

 

그냥 친척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엄마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친척...그정도

 

아빠는 중학생시절 한번, 고등학교시절 한번

 

총 두번 어떤 아줌마를 데려왔었는데

 

당연히 새엄마가 되기위해 왔었겠지만

 

난 전혀 아무말도 걸지 않았고 눈길도 주지않았다

 

그 둘은 그저 지나가고

 

내가 대학생일때 늙은 아줌마 하나를 데려왔는데

 

그 아줌마와는 꾀 오래가나보다..싶었다

 

그냥 그정도다

 

역시 말을 걸거나 눈을 마주친적은 없다

 

아빠가 지방에 살며 생활비만 지원하는 느낌으로 있어서 그런지

 

누나와 나뿐인 생활이었다

 

대학 졸업학기엔

 

취업을 나가서 독립하게 됐는데

 

사실 중학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독립이었다

 

누나가 고등학교,대학생활의 스트레스를 모두 나에게 풀었기 때문?

 

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사실 이건 핑계고

 

난 그저 혼자 살고 싶었다

 

어차피 부모님도 없는 상황에

 

나 혼자 살면 너무 자유롭고 행복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24살이 되어서야 독립하게 되었다

 

첫 월셋방은 300에 35였다

 

다세대주택이었고..

 

2년 좀 넘게 살았다

 

이혼가정에서 살아온 내 소감이라기엔 그냥 일대기지만

 

이쯤에서 끊고 소감이라면

 

내 개인에 대한 감정이 더 북돋아졌던 청소년기였다

 

좋게 말해서 이렇지

 

나쁘게 말하면 혼자 삐뚤어지기 딱 좋다는 얘기다

 

내가 살았던 청소년기는 대부분 엄마가 자녀교육을 전담하는 시기여서

 

애가 나쁜짓을 하든 사람을 죽이든

 

엄마가 온전히 케어해야했다

 

하지만 난 원래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하고싶은것, 해야하는것, 앞으로의 대책 같은 경우를 

 

많이 생각했기에 인생계획의 대부분을 설계하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30대가 된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은

 

이혼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행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것만은 확실히 느껴진다

 

난 지금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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